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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과 따뜻한 자본주의태동 이유와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대하여
박나랑  |  kikiko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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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5  12: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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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이기적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빈부 격차]

해외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또한 ‘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망가졌다. 어떻게 보면 소위 말하는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경제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산층을 제외한 사람들을 보면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산층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여러 고위층 사람들은 말한다. “빈곤은 절대적인 것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즉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라고..

이는 빈곤 자체의 원인이 경쟁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비교’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실제 굶주리는 사람이 늘고 경제적 빈곤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는 이유가 ‘비교’를 통한 상대적 빈곤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20%의 적지 않은 빈곤층들은 경쟁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에 애초에 적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경쟁을 시작할 자금이 없었으며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경쟁에 뛰어들면 그 소자본마저 경쟁자에게 경쟁을 통해 빼앗겼다. 먹이를 찾는 동물들에게는 힘이 세고 빠른 동물이 이기듯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똑똑하고 판단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동물의 사례와 사람의 사례를 비교한 이유가 있다. 사자의 새끼는 사자이고 부자의 자식은 부자가 되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이야기지만 먹이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자는 대대로 먹이를 잘 잡는 사자가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다. 대기업의 자식들은 부모를 통해 상당한 사업 방법과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알게 모르게 배우면서 자란다. 하지만 극 빈곤층에서는 ‘굶지 않는 방법’을 배우면서 자란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우는 게 다른 것이다.

‘고통스러운 빈곤, 굶주림의 빈곤’은 자립할 수 없었다. 경제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이 낮은 계급으로 분류되어 비교당하는 현실에서 가난은 대물림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구제할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사회적 기업이다. 경쟁에 뛰어들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더 이상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일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경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회적 기업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적기업의 따뜻한 이익]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사이에서 경쟁방법을 가르쳐주고 지원해주기 위해 사회적 기업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경쟁을 중요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기업을 왜 강조하고 있을까? 자본주의에서 이런 기업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사람들이 등을 돌려야 맞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은, 사회적 기업은 우리가 생각만 하고 있고 실천할 수 없었던 따뜻함을 사회 전체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기초수급생활비를 제공해주는 등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시행해왔다.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국가장학금을 소득 분위별로 제공해주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하는 이러한 일들은 ‘랜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생활비도 빠듯한 정말 어려운 집안에 업무상 가지고 있는 자가용의 존재로, 정말 어려운 가정이지만 시골이라 땅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장학금을 제공해주지 않는 등 애매하다.

정부정책을 나무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이 정부정책 덕분에 많은 구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람들의 소득을 평가하고 구분해서 ‘돈’을 지원해주는 것에 그친다. 이렇게 받은 돈은 생활비로 쓰이고 다음 달이면 또다시 정부가 ‘돈’을 제공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업은 이러한 정부의 복지정책과는 상당히 많은 면이 다르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마치 봉사 단체인 것처럼 무담보로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고 깨끗하게 살자’는 16가지 선서만 하도록 한 채 소액자본을 제공해준다. 그렇다고 그라민 은행과 같은 사회적 기업들이 봉사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어려운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밑거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삶을 일으키는 것에 성공한 여러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고, 이런 좋은 일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제공하는 등 여러 면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이렇게 창출된 수익은 어려운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것에 쓰인다. 이것이 사회적 기업의 수익이 따뜻한 이유이고 이기적인 경쟁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나는 학교에서 기업가란 유망사업기회를 포착하고 조직체를 결성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고 기업가 정신이란 경영 관리적 액션을 통해 성과를 높이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기업가는 “나를 따르라!”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고객의 감성에 호소하기도 하면서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사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업가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해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리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가정신은 일반 영리기업의 기업가정신과는 그 목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나는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것을 생각했다. 기러기떼의 우두머리는 한 마리의 새가 아니다. 기러기떼는 선두 한 마리를 기준으로 V자 형을 유지하며 날아가다가 선두가 지칠 때쯤에 뒤에 따라오던 새가 선두를 자처한다. 또 이 새가 지치면 그 다음 새를 우두머리로 해서 날아간다. 자본주의에서의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가,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다. 경쟁사회에서 ‘우두머리’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우두머리는 뒤에 따라오는 새들이 없다면 ‘무리’가 될 수 없을뿐더러 무리가 없다면 지쳐 멀리갈 수 없다. 사회적 기업이 이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돕고 있다. 사회 전체를 한 무리로 만들어주며 소외된 빈곤층을 무리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이들은 도움을 받아 열심히 일해 만들어낸 성과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돕는다. 마치 목적지까지 V자 형을 끝까지 유지하며 날아가는 기러기떼처럼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가 한 무리를 형성하며 꾸준히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소수의 창업자만이 고객의 니즈 변화를 캐치해 성공하듯이,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 소외된 사람들의 니즈를 캐치해 성공한다. 이 성공은 물적인 성공과 동시에 사회 빈곤을 낮추는 질적인 성공을 의미한다. 각각 자기 자신을 위해 살면서도 항상 사회 전체의 문제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제는 질적 성공이 필수적이라고 느낀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냉소적인 자본주의에서 얼음을 녹이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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