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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된 당신, 얼마나 도덕적일 수 있는가?
story K 이문원  |  storyk20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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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6  18: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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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른바 '투명인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철학적 논점을 제시한 건 플라톤이었다. 그가 쓴 '국가'에 '기게스의 반지'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기게스는 리디아의 양치기다. 양떼를 몰고 나간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더니 웬 지하동굴이 나타난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생물(뭐 그냥 '거인')의 시체가 있고, 그 손가락엔 황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를 빼내 갖고 다니던 중, 양치기 동료들과 술 처먹고 놀다 별 생각 없이 반지의 거미발을 돌리게 됐다. 그러자 기게스는 그 순간 투명인간이 돼버렸다.

갑자기 기게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양치기 동료들은 그가 가버린 줄 알고 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기게스가 빡 돌아서 거미발을 도로 원상태로 돌려놓자, 그는 다시 모습이 보이게 된다.

현명한 기게스는 양치기 동료들에게 무의미한 화풀이를 하진 않았다. 대신 이 황금 반지에 자기 운명을 올인하기로 했다.

그래서 저소득 양치기 라이프를 접고 도시로 떠난 뒤, 도시에서 이 투명인간의 위력을 발휘해, 기게스는 결국,

(1) 왕비를 범하고, (2) 왕을 살해한 다음, (3) 권력을 거머쥐고, (4) 오랫동안 리디아를 다스린 왕족의 선조가 된다.

2.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길 거 같은데, 사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이 '기게스의 반지'를 대거 참조했다. H.G. 웰즈도 '투명인간'을 쓰면서 그랬고.

물론 뭐, 플라톤이 톨킨이나 웰즈처럼 블록버스터 어드벤처를 들려주려고 이런 걸 쓴 건 아니다. 윤리학의 근본적 질문, 즉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한 거다. 만약 '기게스의 반지'를 손에 쥐고 있다면, 인간에게 과연 도덕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남들에게 들킬 리도 없고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지도 않는 상황에서, 저 가련한 양치기 소년의 인생역전 욕구와 그를 위한 천인공노할 망나니짓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갖다 댈 수 있을 것인가.

근데 이거,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은 얘기다. 애초 도덕률이란 것 자체가 도덕적 동기에 의한 게 아니라 타산적 동기에 의해 발동되는 거니까.

차근차근 들어가면 대략 이런 식이다.

어찌됐건 사회 내에서 인간들은 서로 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의 자유를 조금씩 덜어내는 계약들을 한다. 이 계약을 성립시키려면, 이를 어겼을 시 가시화된 처벌과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기본이다.

이거야말로 순도 100% 짜리 타산적 동기다. 선행되는 그 어떤 도덕적 우위도 발생하지 못한다. 그러니 도덕률도 그에 철저히 종속돼, 계약에서 정한 규칙을 따르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고, 규칙을 위반하면 도덕적으로 그른 것이 되는 식이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투명인간은 계약상 명시된 제재와 처벌의 대상에서 피해나갈 수 있단 점이다. 애초 보이질 않으니 계약을 어겼는지 아닌지 잡아낼 수가 없잖아, 기본적으로. 적어도 무슨 투명인간을 잡아내는 특수한 CCTV라도 개발되지 않는 한은 계속 그럴 거.

그럼 그런 존재와는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로에 대한 제재와 처벌의 균등성에서 이뤄지는 게 사회계약의 기본이다. 어느 한쪽이 균등성을 깨뜨린다면, 계약은 성립이 안 된다.

여기서, 계약도 안 된 존재를 놓고 도덕률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급했듯, 사회계약은 계약이 일단 선행돼야 도덕률을 적용할 수 있는 구조이므로.

같은 맥락에서, 사회계약 정의에 따르면, 누구라도 그 계약의 범주 밖에 있는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뭐, 반대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 투명인간은 그냥 열외가 된다. 도덕적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3.

자, 이제 타산적 동기에 근거한 도덕률로는 투명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들이댈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이른바 결과론적 도덕률의 한계다.

결국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은, 왜 타산적 동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도덕적 동기에 자신의 행동을 묶어놓아야 하는가를 묻는 형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왜 그래야 할까? 왜 도덕적 동기를 타산적 동기보다 우위에 둬야할까?

사실 명확한 이유는 없다.

흄을 들이대도, 칸트를 들이대도 설득력 있는 답은 안 나온다. 지금 당장 투명인간이 딱 등장해버리면 현재 인식되는 모든 종류의 실질적 도덕률이 작살나 버리는 거다. 그러니 삶을 도덕적 동기에 의해 끌고 갈 것인지 타산적 동기에 의해 끌고 갈 것인지는, 사실상 이성으로 따질 수 없는, 이성을 넘어선 선택이 된다.

그럼 이렇게도 될 수 있다.

선택에 대한 이유를 제공할 수 없으면 그 선택은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럼 투명인간이 도덕적으로 사는 건 비이성적 선택이 된다. 반대로 막 나가게 사는 것도 비이성적 선택이 되지만,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는 문제 자체가 제기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그럼 결국, 이런 얘기밖에 할 게 없어진다.

4.

"너의 양심은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 본래의 너 자신이 돼라."

- 니체

5.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에 도덕적 이유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궁극적으론 이성적인 선택도 불가능하다.

도덕적이란 건 그저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지, 동기를 부여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가 논의의 중심이 돼버린다. 일종의 자기규정적 선택이다.

그냥 거기서 모든 게 끝나버린다. 궁극적인 이유도 없고, 그냥 자기 본질을 찾는 문제로 귀속돼버린다.

Fin.

6.

물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좀 다를 거다.

종교적 계율이란 건 근본적으로 신이 미립자 하나까지도 잡아내는 눈으로 모두를 감시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그리고 모든 계율이 으레 그렇듯, 저런 짓하고 다니는 투명인간은 사탄의 자식이거나, 뭐 그쯤 되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무신론자고,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그냥 본래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다 아마.

본래 나 자신.

7.

모르긴 몰라도, 난 대략 투명인간이 돼도 지금과 크게 다르게 살 거 같진 않다.

나 역시 이런저런 도그마에 노출된 채로 살아오던 사람이어서, 갑자기 계약에서 풀려났다고 해서 뭔가 뻔뻔스런 짓들을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아이들에게 죄의식부터 가르치는 사회문화적 도그마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예요.

근데 그렇더라도, 걸그룹들 숙소엔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와 볼 거 같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325968493&fref=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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